신륵사 대장각기비 > 문화유산

본문 바로가기

문화유산

문화유산 HOME


국가지정문화재 신륵사 대장각기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44회 작성일 25-05-18 13:30

본문

332d310575810feaafd6c3ad23a651a4.jpg

신륵사 대장각기비

 

지정번호 : 보물 제230호

지 정 일 : 1963.1.21

시     대 : 고려 1383년(우왕9)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282

 

 

 

 신륵사 대장각의 건립내력을 새긴 비로서 극락보전 서쪽 언덕의 비각에 전한다.

이곳에는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비신의 높이는 133cm, 폭은 88cm로서 비신 둘레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보제존자석종비와 동일한 수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연질의 대리석 비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신륵사에는 경율론 3장을 인출하여 이를 수장하던 대장각이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었다 한다.

서쪽이라면 지금의 명부전쪽이 되리라 짐작된다.


현재 이 비는 신륵사의 동쪽 언덕위에 위치해 있다.

비신은 좌단이 깨어져 몹시 손상되어 글자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이 비를 세운 연대를 밝힌 부분에도 손상이 있어 이를 알 수 없으나 대체로 홍무(洪武) 16년(우왕 9년, 1383)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이 비는 나옹의 석종비보다 4년후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진다.

비문은 자경 2cm의 해서(楷書)로서 예문관제학 이숭인이 짓고 진현관제학 권주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한 승려와 신도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이 비의 형태는 신라이래 건립되던 통식(通式)의 형식과는 매우 다르다.

즉 귀부와 이수 등의 형태는 볼 수 없고, 그냥 복련대석(伏蓮臺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대치되고 있다.


이와같은 비대와 옥개석은 그 조형이 나옹의 석종비에서보다 훨씬 간략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비대에서 뿐 아니라 특히 옥개에서 공포와 와구등의 조각이 완전히 생략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