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정문화재 파사산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41회 작성일 25-05-21 11:06본문

지정번호 : 사적 251호
지 정 일 : 1973. 7. 21
시 대 : 조선시대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산9 외
규 모 : 주위 (성둘레) 935.5m
재 료 : 石築
해발 250m 정상(頂上)을 중심으로 하여 5각형 둘레로 경사가 가파른 곳을 이용하여 석재(石材)로 축성하였다.
주위는 약 943m 동문(東門)은 송촌리(松村里)를 향(向)하고 남문(南門)은 당남리(塘南里)와 남한강변(南漢江邊)의 흥천면(興川面) 계신리를 향(向)하였다.
축성년대(築城年代)가 삼한시대(三國時代)라는데는 의심이 없는것 같으나 신라(新羅)가 파사왕(婆娑王) 2년에 쌓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파사왕 2년 당시에는 이곳이 신라의 영역에 속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임진왜란에 경기 방어사 변응성(邊應星)이 파사성을 수리하여 도성(都城)의 상류(上流)를 견고히 하자고 주청하였으나 역사가 방대하여 속히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가 황해도 승군총섭(僧軍總攝) 의암(義巖)으로 하여금 유승(遊僧)을 모아 수축하게 하여 1595년에 수리를 마치고여기에 금강루(襟江樓)를 짓고 배, 군기(軍器)를 모두 갖추고 엄연한 관방(關防)을 이루었다고 기록하였다.(西崖集)
우리 시에서는 일찍부터 주목 받아온 중요한 산성인 이파사성의 보수정비를 위해 먼저 기전매장연구원에 발굴조사를 의뢰하였다.
발굴조사결과 파사성은 내외협축으로 축성된 돌로 만든 성으로, 암반층을 기반층으로 하여 다듬은 직사각형의 돌을 이용한 초축성벽과 부정형의 쪼개진 돌을 이용한 추축성벽이 있는데, 이는 여러시기에 걸쳐 수축되어 오늘날의 구조를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