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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 세종대왕릉, 효종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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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55회 작성일 25-05-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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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릉, 효종대왕릉

 

지정번호 : 사적 제 195호

지 정 일 : 1970. 5. 26

시     대 : 조선시대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 산83-1

  

영릉

조선 제 4대왕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합장릉이다.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진 영릉의 지세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층층이 해와 달의 모습을 띠면서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형국이라 한다.

거기에다 정남향 이어서 "가히 만세에 나라를 이어갈 만한 기가 탄생할 자리" 인데, 이를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이라한다.


영릉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재실과 세종대왕 동상이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세종대왕기념관인 세종전이 있으며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성역화사업으로 주변정비를 실시하였다.

 

훈민문을 지나 너른 능역을 조금 걸으면 연못과 홍살문, 정자각이 차례로 다가선다.

언덕에 올라서면 석상, 석마, 문인석, 무인석을 앞에 둔 합장릉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조선 왕조 500년사의 가장 뛰어난 임금인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이다.

당초에는 광주 대모산에 있던 것을 예종(1469년)때 이곳으로 천장되었다.

이능을 천장후 조선조가 100년 연장되었다는 가백년설이 전해지고 있다.

 

 

녕 릉

녕릉은 조선 제 17대 효종(1619-1659)과 인선왕후 장씨가 모셔진 쌍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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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종릉 역시 능역과 푸른 소나무들이 주변에 울창하여 그윽함을 풍기지만

세종릉에 비하면 찾는 이가 적어 사방이 사뭇 조용하고 호젓하다.

능을 감싸며 유창하게 흘러내려온 묘내수는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를 빠져

나와 참도 가운데 금천교가 놓인것이 주변의 경관과 어울려 이채롭고 절묘하다.

효종은 대동법을 실시해 백성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고,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백성들의 어려움을 헤아렸다.

역법을 개정하고『인조실록』『국조보감』『농가집성』등을 간행하여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농업생산성을높이는 데 기여했다.

 

효종은 무엇보다 북벌정책을 수립하고 군비개편은 물론 군사훈련을 강화했다. 병자호란 때 당했던 한을 씻고자 해서였다. 

그러나 재위 10년 만에 왕의 나이 41세로 창덕궁대조전에서 승하하니 청나라에 당한 한을 가슴에 묻고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였다.


당초에는 양주 건원릉에 있던 것을 현종(1674년)때 이곳으로 천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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