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정문화재 대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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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32회 작성일 25-05-23 02:13본문

지정번호 : 유형문화재 제20호
지 정 일 : 1972. 5. 4
시 대 : 조선 1785년 (정조9)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하동 200-1(청심로 113) 건물 101평
우암(尤菴) 송시열(宋詩烈)선생을 모신 사당으로 정조 9년에 김량행(金亮行)등 유림에 명하여 건립하고 동년에 사액(賜額)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본전 24평, 강당 57평, 비각 8평, 내·외 삼문 12평추향제 39평등이 있다.
1785년에 왕명으로 창건되어 대로사라 사액되었는데 1873년 (고종10)에 강한사로 개명되었다.
주축상에는 사당과 내 ·외삼문이 일렬로 배치하고 있으며 강당은 주축에 직교되게 위치하고 있다.
비각은 외삼문 밖에 있는데 담장이 둘러져 별도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전면에는 개방된 퇴간(退間)이 있고 측면과 후면에는 방화벽이 설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감실이 있다.
부재형태와 가구수법은 18세기 익공형식의 기준이 될 만큼 완벽하다.
이 사당은 다른 사당과는 달리 서쪽을 향하여 효종의 녕릉을 바라보고 있다.
송시열은 효종이 북벌을 꾀하였을 당시 선생에게 북벌을 논의하던 가장 신임하는 신하이며 왕의 대군시절 스승이었다.
김자점의 무리가 청나라에 효종이 새 사람을 등용하여 장차 항거하려 한다고 무고(誣告)하니 청은 병력을 국경에 집결하고 사신을 보내어 추궁하였다.
이에 선생은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갔다가 효종 9년(1658년)에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다음해 효종이 승하하였다.
그 뒤 효종의 장례때 대왕대비의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윤구(尹口)의 3년설(設)에 맞서 기년설(1년)로 시비가 분분하다가 현종이 승하하고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덕원, 태천, 거제, 청풍 등지로 귀양살이를 하였다.
숙종 15년(1689년)에 왕세자 책봉문제로 상소하였는데, 숙종의 비위를 거슬려 노여움을 사서 제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그 후 5년만에 복관(復官)되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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