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정문화재 한백겸 묘 및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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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50회 작성일 25-05-23 01:04본문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165호
지 정 일 : 1998. 4. 13
시 대 : 고려시대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평리 산1
한백겸(1552~1615) 선생의 자는 명길(鳴吉), 호는 구암(久庵), 본관은 청주이며 민순(閔純)의 문인이다. 1585년(선조18) 교정청(校正廳)이 신설되자 정구(鄭毬) 등과 함께 『경서훈해(經書訓解)』의 교정을 맡아 보았다. 이듬해 천거로 중부참봉 (中部參奉)이 되고 이어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내고, 선릉참봉(宣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했다.
1589년 그는 자살한 정여립(鄭汝立)의 시체 앞에서 통곡을 한데다 그 시체를 후히 염(殮)한 사실이 발각되고, 또한 정여립의 생질인 이진길(李震吉)과 친분이 있었으므로 장형(杖刑,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과 유형(流刑, 죄인을 먼곳이나 섬으로 귀양 보내는 형벌)의 형벌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사면(大赦免)으로 풀려나와 내자사직장(內資寺直長)으로 기용되고, 이후 호조좌랑, 형조정랑, 청주목사등을 거쳐 1607년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고 이해 호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 선조가 죽자 빈전도감당상(殯殿都監堂上)이 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강원도안무사(江原道按撫使)를 거쳐 이듬해 파주목사가 되었다가 얼마뒤에 사임했다.
역학에 밝아 선조때 『주역전의(周易傳義)』의 교정을 맡아보았으며,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를 저술하여 실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원주의 칠봉서원(七奉書院)에서 제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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