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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문화재 서희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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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303회 작성일 25-05-2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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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장군묘

 

지정번호 : 경기도기념물 제36호

지 정 일1977. 10. 13

시     대고려998년 (목종 1)

소 재 지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 산53-1

 

 고려시대에 거란의 80만 대군을 담판으로 유혈의 전투 없이 물러가게 한 서희(942~998)를 모신 유택이다.

봉분은 부인 묘와 쌍분을 이루며, 장대석으로 2단의 호석을 두른 장방형이다.


쌍분의 중앙 전면에는 묘비 1기가 있고, 쌍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이 1기씩 놓여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을 각 1쌍씩 배치되었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계체석을 이용한 3단정제(三段庭制)이며 고려시대 묘제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서희는 960년(광종 11) 18세에 갑과로 과거에 급제한 뒤 내의시랑을 거쳐 983년(성종2)에는 군정의 책임을 맡은 병관어사가 되었다.

이후 태보. 내사령의 최고직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정치적 활동에서도 중책을 맡았으나 외교적으로 보다 큰 업적을 올렸다.


고려의 적극적인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이 993년 소손녕을 총수로 한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다.

적은 북쪽 경계의 봉산군을 격파하고 계속 남쪽을 위협하였다.

이에 고려에서는 항복하자는 견해와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화해하자는 할지론이 우세하였다.


이에 서희는 단신으로 적진으로 가서 소손녕과 담판으로 유혈의 전투 없이 적의 80만 대군을 물러가게 했다.

그리하여 압록강 동쪽의 여진이 점거한 280리 땅, 즉 지금의 평북일대를 보존하는 위대한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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