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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문화재 신접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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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49회 작성일 25-05-17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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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접리 고인돌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4호

지 정 일 : 1996. 1. 11

시     대 : 고려시대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297-20

  

고인돌은 동남아시아의 농경민족의 풍습으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 지하에 석곽(石槨)을 만들고 그 위에 책상모양이나 바둑판 모양의 돌집을 세운 구조물이다.한국에서는 벼농사가 제일 쉬운 지역인 영산강유역에 수만개의 고인돌이 있고 점차 주변지역으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 풍습은 벼농사 기술과 함께 북쪽으로 퍼지면서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인 요동반도에서 끝난다.

경기도 지역은 벼농사 기술을 개발한 지역답게 수많은 고인돌이 발견된다.

한강·임진강의 하구인 강화도 부근의 고인돌을 필두로 김포평야, 포천군 일대, 광명지역, 용인지역에 광범위하게 고인돌이 남아 있다.

 

고인돌은 주검을 매장하는 위치와 받침돌(支石)의 유무에 따라 크게 세가지 형식으로 구분된다.

지상에 판돌(板石)로 돌방(石室)을 만들어 주검을 넣고 그 위에 크고 넓은 덮개돌(上石)을 올려 놓은 탁자식(卓子式) 또는 북방식, 땅 밑에 판돌이나 깬돌(割席)로 널을 만들어 주검을 넣은 다음 지상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은 기반식(基盤式) 또는 남방식, 그리고 기반식과 유사한 형식인데 받침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이다.

 

신접리 고인돌은 탁자식 또는 북방식에 속하는 고인돌로, 받침돌 중 마구리벽은 없이 좌우의 간벽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데 우측 간벽은 안쪽으로 쓰러져 있는 상태로 민가의 담장안에 들어가 있다.

이 지석묘에서부터 동남방 약 2km 지점 가정리에 있던 고인돌은 1980년 경지를 정리하면서 회손시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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