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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문화재 임원준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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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52회 작성일 25-05-2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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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준 선생 묘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 12호

지 정 일 : 1986. 4. 10

시     대조선시대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시 능현동 산25-5

규     모 : 비높이 1.27m × 폭 64m × 두께 50㎝ / 재     료 : 호석·비대·비갓-화강암,비신-대리석  

 

 임원준(1423~1500)선생은 조선 전기(前期)의 문신이며 학자로서 자는 자심(子深), 호는 사우당(四友堂), 본관은 풍천(豊川)이며 임사홍(任士洪)의 아버지이다.


세종(世宗) 27년(1445) 시(詩)로서 총애를 받아 집현전찬서국(集賢殿撰書局)에 발탁되어 부사정(副司正)이 되었다.

세조 2년(1456)에는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예문관직제학으로서 명나라 영종의 즉위를 축하하는 표전문(表箋文)을 지어 임금께 올려 왕의 극찬을 받았다. 세조 8년(1462) 호조참판이 되었고, 이듬해 『의약론(醫藥論)』을 주해했고, 세조 12년 (1446) 발영시(拔英試)와 등준시(登俊試)에 각각 2등으로 급제했다.

성종2년(1471)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3등으로 서하군(西河君)에 봉해지고 좌찬성이 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 후 아들 임사홍의 죄로 사후 관직이 삭탈되었다.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특히 의학에 정통하여 저서 『창진집(滄疹集)』을 남겼다. 묘의 둘레에는 4면에 호석을 둘렀고,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을 놓았으며, 좌우에는 특이하게 문관석은 없이 장중한 무인석을 배치하였다.


묘 입구에 세운 대리석 신도비는 장대석의 이중기단 위에 화강석 비좌를 설치했고, 이수를 갖추었다.

 

이 비는 연산군 6년(1500)에 세운 것으로 홍귀달이 짓고 임희재가 썼다고 하는데, 비문은 「호문공묘비명(胡文公墓碑銘)」 이란 전서체 글씨만 보일 뿐 판독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마멸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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