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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정문화재 최시형 선생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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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240회 작성일 25-05-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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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 선생 묘

 

지정번호향토유적 제 8호

지 정 일1986. 4. 10

시     대조선말

소 재 지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 산138

규     모 : 비신높이 2.12m, 폭 76.5m, 두께 0.47m 

 

 

최시형(1827~1898)선생은 조선 말 동학의 제2대 교조로서 초명은 경상, 호는 해월(海月), 본관은 경주이다. 고아로 성장 조지소(造紙所)에서 일하다가 동학에 입교하여 제1세 교조 최제우의 뒤를 이어 제2세 교조가 되었다.

동학의 탄압을 피하면서 포교에 힘썼고 『동경대전(東經大全)』, 『용담유사(龍潭遺詞)』등의 경전을 완성, 전국에 육임제(六任制)조직을 확립하고 전국에 육임소(六任所)를 설치하는 한편 고종 30년(1893) 이후 교조신원운동에 전력했다.


선생은 당시 시위운동에 일체의 폭력사용을 금하였으나 고종31년(1894) 전봉준이 동학혁명운동을 일으키자 북접접주 (北接接主)들에게 총궐기를 명령, 10여만의 병력을 인솔하여 남접군(南接軍)에 합세했다.

그러나 동학혁명군이 관군·일본군의 혼성군에게 연패하자, 영동·제주로 피신했다가 1898년 원주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어 6월 2일 순도하였다.


6월 5일 광화문 밖에 가매장된 시신을 이종훈(李鐘勳)등이 수습하여 야간에 밤길을 달려와 이곳에 장사지냈다. 1907년 고종의 특지(特旨)로 신원되었다.

봉분은 원형으로 호석을 둘렀으며, 봉분 앞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상석·향로석·촛대석을 마련했고, 우측에는 옥개석과 장방형 비좌를 갖춘 대리석 묘비가 서있다.


묘비는 1980년 3월 21일 천도교 해월신사 묘비건립위원회에서 세운 것으로 이선근이 짓고 양재한의 글씨, 김한의 제자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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